아
이팟, 맥북, 아이맥으로 대변되는 애플컴퓨터사는 다른 글로벌 IT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크게 알려지지 못한
기업 중 하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애플에 대해 아이팟을 제작하는 MP3전문 기업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윈도를 만든 빌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해온 PC 산업의 중심 기업인 것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 이 두 사람의 이름으로 시작돼는 애플의 역사는
MS의 역사만큼이나 PC산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굉장한 변화를 이끌어 왔다. 혹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PC의 기본 개념을
정립한 기업으로 애플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애플이라는 기업이 과거의 PC산업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으며 미래의
PC산업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애플의 시작
애플은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의 세 사람에 의해 창립되었다. 서로의 생각과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을 만들기를 원했었고 결국 애플 1 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애플 1은 산업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시장에서의 반응도
냉담했었다. 주변의 지인들과 상인들을 설득하여 조금씩 판매량을 늘려가던 애플 1은 미국의 유력한 전자 부품 판매 회사인 ‘크래머
일렉트로닉스(Cramer Electronics)’의 눈에 띄게 되어 주문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최초의 애플 컴퓨터인 애플 1의 시장 진입이 이루어진 후 그들은 바로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고 보다 향상된 성능과 키보드 일체형의 모습을 가진 좀 더 완전한 형태의 애플 II를 개발하게 되었다.
개발 직후인 1977년 3월, 미 서부 해안 컴퓨터 전시회(West Coast
Computer Faire)에서 처음 소개된 애플 II는 다른 경쟁사의 PC들 보다 고가였지만 곧 시장을 선도하는 상품이
되었으며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붐을 이루어 이후 컴퓨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시발점이 되었다.
애
플 II는 흑백의 문자로만 이루어져 있던 PC사용 환경을 컬러 그래픽으로 장식하기 시작했으며 오픈 아키텍처의 적용으로 높은
완성도를 통해 사용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당시 개발된 스프레드시트 등의 프로그램들이 애플 II의 활용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고 개인용 PC로 개발되었던 애플 II가 업무용 시장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애플 II의 성공과 함께 다양한 후속기종을 내놓게 되었고 이와 함께 더욱 완성도
높은 소프트웨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PC산업의 규모는 점차 확대되며 유능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자들의
등장에 촉진제가 되었다.
80
년대 초반 애플은 교육용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린이도 쉽게 다룰수 있는 컴퓨터 언어인 로고(LOGO)와 같은
소프트웨어와 교육용 콘텐츠로 세계의 여러 학교에서 환영 받았다. 이러한 교육 시장으로의 진출은 캘리포니아 주 소재의 학교마다
하나씩 애플 II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지원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교육 시장에서 애플의 확고한 선점은 가정용 시장에서도 큰 힘이
되었고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 업무용 컴퓨터 시장이 큰 수익성을 가질 거라 예상했던 IBM과 MS는
서로간의 공조체제를 구축하여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애플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1980년 5월 애플 Ⅲ를 선보였지만 냉각팬 과열과 같은 기기적 결함 등의 문제로 수천 대의 컴퓨터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등 시장에서의 상황이 계속 악화 되어갔다.
이 상황에서 IBM은 중대형 컴퓨터로 쌓아 올린 역사와 전통에 의한 신뢰감을
배경으로 한 IBM PC의 기치 아래 다른 협력사들에게 개방적인 하드웨어를 생산했고 MS의 MS-DOS를 번들로 제공한 16비트
개인용 컴퓨터를 시장에 선보였다.
결국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급속도로 떨어지게 되었고
시장공략에 실패하기에 이른다. 결국 MS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애플은 다른 전술을 구사했는데 독자적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PC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폐쇄적인 하드웨어 정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당
시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사와 함께 진행된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의 컴퓨터에는 GUI (Graphic User Interface :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애플의 차세대 PC 프로젝트였던 애플 LISA에 이를 적용하기로 했다.
애플 LISA는 1983년 GUI가 적용된 최초의 개인 컴퓨터로 시장에 등장했지만 9,995달러에 달하는 높은 가격과 제한적인
소프트웨어 때문에 상업적인 실패를 맛봐야만 했고 이로 인해 스티브 잡스는 경영 내분으로 그룹에서 밀려났고 제프 라스킨이 추진하던
보다 저가의 컴퓨터 프로젝트인 매킨토시로 대체되었다.
■애플의 중심 프로젝트 매킨토시
1984
년 애플은 매킨토시(Macintosh : 이하 MAC)를 발표했다. 매킨토시는 슈퍼볼 경기 중계방송에서 방영된 유명한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알려졌다. ‘1984’로 알려진 이 광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이다. 150여만
달러를 들인 이 광고는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았고 슈퍼 볼 XVIII 기간이던 1984년 1월 22일에 방송되었다.
광고를 통해 애플은 IBM PC가 빅브라더이고 매킨토시는 바로 그 빅 브라더를 타도하는 영웅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IBM계열의 PC와 애플 MAC의 대립적 경쟁 구도가 시작 되었다.
1985년 스티브 잡스가 영입했던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와의 내분 끝에 잡스를
애플에서 몰아내고 최고경영자에 취임한다. 1985년, 친 스컬리 경향을 갖게된 애플의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로부터 주요 업무를
박탈했다. 잡스는 후에 애플에서 퇴사하고 넥스트 사를 창업하게 된다.
이후 매킨토시는 인쇄프로세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훌륭한 인쇄 품질의 레이저라이터와 페이지메이커의 출시는 매킨토시의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이다. 레이저라이터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된 최초의 레이저 프린터여서 훌륭한 출력 품질을 만들 수 있었고 WYSIWYG형 전자 출판 소프트웨어인 페이지메이커는
본격적인 전자 출판용 솔루션이었다.
이런 시스템의 등장과 함께 매킨토시는 본격적인 전자출판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전자출판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애플의 매킨토시는 DTP(DeskTop Publishing)의 주축을 담당하게 되었고 인쇄 및
디자인 관련 업무의 80%이상을 매킨토시가 점유하기에 이른다. 이 시스템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Quark Xpress와
어도비의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통한 DTP 솔루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동시대인 1985년 MS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윈도 1.0을
발표했지만 매킨토시의 OS 시스템에는 위협적인 대상이 못되었다. 하지만 이후 윈도 3.1와 95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고가였던
매킨토시의 저렴한 대안으로 떠오르며 PC 시장에서 패권을 쥐게 되며 그래픽 솔루션 및 전문작업에는 매킨토시가, 일반 개인
사용자들에게는 IBM호환 PC가 자리를 잡는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1991년에 애플은 MAC OS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 작업을 벌여 시스템 7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속도가 느리고 많은 컴퓨터 자원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컬러 인터페이스 기반의 다양하고 강력한 네트워크
호환성등 차세대 컴퓨터 운영체제의 발전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
당시의 경쟁제품인 OS/2나 윈도, 아미가 등에 비해 훨씬 발전된 형태인 시스템 7은 애플이 2001년 후속 운영체제인 MAC OS X를 내놓기 전까지 애플이 발매한 모든 컴퓨터의 기반이 되었다.
한편 MS 윈도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사람들은 더 저렴하고 보편적이며 실용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운영체제 시장에서의 점유율 차이가 점점 벌어졌다. 특히 업무용 시장에서의 MS 제품의 성공과 저렴한 가격의
컴퓨터와 주변기기,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는 지원 소프트웨어들로 인해 많은 고객들이 ‘윈텔(윈도+인텔)’ 진영으로 돌아섰고
MS에 대한 시장 점유율 싸움에서 다시 우위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애플은 자사의 운영체제의 멀티태스킹 능력과 메모리 점유에 대한
개선을 추진했지만 내린 결론은 차라리 새로운 운영체제를 채택하여 매킨토시에 맞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었다. 결국 애플은
Be의 BeOS, 넥스트의 넥스트스텝, MS의 윈도 NT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애플은 넥스트스텝을 채택했고 이는 훗날
맥 오에스 텐의 기반이 된다.
이런 결정에 따라 1997년 2월 7일 애플은 넥스트 사와 넥스트스텝 운영 체제에
대한 인수를 마쳤다.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다시 애플로 돌아오고 CEO였던 길 아멜리오는 저조한 실적과 위기 상황으로 경영을
몰아간 책임을 지고 최고 경영자에서 물러났다. 이 때 스티브 잡스는 임시 최고경영자의 자격으로 다시 애플의 경영을 맡게 되었고
다시 재정비와 부흥을 이끌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먼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97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MS와
파트너십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MS는 향후 5년간 계약 관계를 유지하며 매킨토시용 MS 오피스를 발매하고 애플에 대하여 1억
5,000만 달러의 투자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MS의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매킨토시에 번들로 탑재한다고 밝혔다.
MS 회장 빌 게이츠는 스크린상으로 밝힌 메시지에서, MS가 향후 매킨토시용으로
발매할 소프트웨어의 로드맵을 밝히고 애플의 성공을 위해서 도움이 될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스크린을 통해 화상이 나온 뒤 스티브 잡스는 MS와의 필요 없는 경쟁보다는 애플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장했다.
(당시 MS는 반독점 소송 진행 중이었다.)
1997년 11월 10일 애플은 새로운 인터넷 시대에 맞추어 온라인 스토어를
발표했다. 이 사이트는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같이 가지고 온 웹오브젝트 응용 프로그램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이 새로운 온라인
직거래 상점은 애플의 새로운 생산 전략에 따라 새롭게 개편되었고 파워피씨 G3을 탑재한 새로운 컴퓨터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Think Different, Apple's Design
1998년 애플은 초창기 매킨토시 128K의 디자인으로 회귀하여 모니터와 본체를 일체화한 디자인의 새로운 컴퓨터 아이맥을 선보였다. 아이맥을 디자인한 팀은 훗날 아이팟을 디자인한 조나단 아이브가 이끌고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소재를 베이스로 채택하여 매우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아이맥은
시장에서 대단히 새로운 평가를 받으며 발매 첫달에만 거의 80만 대가 판매되어 애플 위기 회복의 전기가 되었다. 아이맥 덕분에
애플은 1993년 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애플은 데스크톱 PC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제품 디자인에 대한 전략을 꾸준히 수립해
왔다. 애플은 보다 나은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흰색 일반사용자용 아이맥과 아이북을 출시하고 교육
시장을 겨냥한 일체형 컴퓨터인 이맥(eMac)을 출시했다.
당시 조개북으로 불리던 아이북의 초기 모델은 아이맥과 패밀리룩을 형성하며 새로운
PC 디자인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한편 전문가용 매킨토시 컴퓨터들은 금속 재질의 외장을 사용했다. 이후 2001년 티타늄
파워북을 시작 금속 재질의 제품들이 대거 등장하며 2003년에는 파워맥 G5가, 2004년에는 시네마 디스플레이가 출시되었다.
아이맥을 비롯한 새로운 애플 제품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수익 또한 상승했다. 컴퓨터
관련 언론들은 애플의 발표에 대하여 귀를 기울였고 애플의 기술진이 다음에는 어떤 프로젝트를 내어 놓을지에 대한 공론이
활성화되었다. 애플이 어떤 새로운 것을 선보이면 사람들은 이것을 ‘새로운 표준’이라고 불렀다.
■OS X의 등장
2001년 애플은 차세대 매킨토시용 운영 체제인 맥 오에스 텐을 발표했다. 넥스트의
오픈스텝과 BSD 유닉스에 기반을 두어서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다시 재설계한 운영체제이다. 일반 사용자와 전문 사용자 모두를 위해
유닉스의 장점인 안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높은 보안성을 가지는 한편 매킨토시의 전통적인 사용하기 쉽고 간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결합하였다.
또한 애플은 클래식 운영 체제에서 쉽게 오에스 텐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에뮬레이션을
통해 클래식 운영 체제 환경에서 사용하던 응용 프로그램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개발자들은 카본 API을 이용하여
기존의 클래식 운영 체제용 소프트웨어를 맥 오에스 텐에 맞게 재컴파일하여 쉽게 맥 오에스 텐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었다.
2002년 애플은 낫씽리얼(Nothing Real)과 그 회사의 디지털 콤포지트
프로그램인 셰이크(Shake)를 인수했다. 같은 해에 애플은 Emagic을 사들여서 전문가급 음악 제작 프로그램인
로직(Logic)으로 발매했다. 이로 인해 애플의 전문 음악가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었다.
한편 일반 사용자용 음악 제작 프로그램인 개러지밴드(Garage Band)를 개발해
발매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2002년 아이포토가 출시됨에 따라 애플의 전문가용 패키지와 일반사용자용 솔루션인 아이라이프에
합쳐져서 매킨토시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지원에 큰 힘이 되었다.
여기에 오피스 사용자들을 위한 아이워크의 등장은 업무용 PC로써의 매킨토시의 역할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기존 MS진영의 오피스 프로그램군인 MS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를 사용하기 위해 많은 오픈오피스
프로젝트에 기대왔던 매킨토시 유저들은 아이워크의 등장에 환호했다.
먼저 발매했던 MS의 MAC용 오피스의 완성도도 훌륭했지만 OS X를 기반으로
새롭게 등장한 오피스 프로그램인 아이워크의 유저들은 점차 늘어만 갔다. 특히 파워포인트와 같은 역할을 하던 키노트는
프레젠테이션의 집중도를 높이는 다양한 이펙트로 더욱 큰 사랑을 받았다.
한편 애플은 매크로미디어로부터 동영상 편집 소프트웨어인 파이널 컷 프로를 구매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반 가정용 시장을 겨냥한 아이무비, 전문가를 위한 파이널 컷 프로가 1999년에 출시되었다. 파이널 컷 프로는
현재 가장 성공적인 비디오 편집 프로그램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애플은 Astarte 사의 DVDirector 프로그램을 구매하여 일반용과 전문가용으로 각각 iDVD와 DVD 스튜디오 프로를 출시해 영상 편집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멀티미디어 전문 하드웨어로써의 입지를 더욱 두텁게 했다.
■최초의 인텔 베이스 맥 컴퓨터, 아이맥
애플 CEO 스티브 잡스는 2005년 6월 6일 키노트에서 애플이 2006년부터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매킨토시를 만들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고 2006년 1월 10일 애플은 인텔 프로세서를 장착한 최초의
매킨토시를 선보였다. 이 때 선보인 기종은 맥북 프로와 아이맥이었다. 두 컴퓨터 모두 인텔 코어 듀오 칩셋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더 빠른 속도와 향상된 성능을 선보였다.
2월 이후, 애플은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 미니를 출시했다. 맥 미니는 코어
듀오 프로세서와 코어 솔로 프로세서(싱글 코어)를 장착하고 미디어 솔루션인 프론트로(DVD, 음악 파일, 동영상 파일, 이미지
파일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소개하여 가전시장으로의 진출의도를 내보였다.
2006년 8월 7일 WWDC에서 파워맥을 대체하는 맥 프로,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Xserve를 발표함으로써 애플은 종전에 예고했던 것 보다 더 빨리 인텔 CPU기반으로의 이전을 완료했다. 4월 5일에는
애플에서 인텔맥에 윈도 XP 등 다른 운영체제을 설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부트캠프 소프트웨어를 발표하였다.
현재 인텔 프로세서 기반 매킨토시는 공식적으로 맥 오에스 텐, MS 윈도와 리눅스를
가상 환경을 거치지 않고 모두 구동할 수 있는 유일한 컴퓨터이다. 맥 오에스 텐인 10.5 버전 레오파드(Leopard)에는
부트캠프를 패키지로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인텔 칩셋을 적용한 애플의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PC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윈도 시스템에 젖어있던 수많은 PC유저들이 MAC으로 좀 더 쉽게 스위칭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을 정도로 부트캠프의 역할은 굉장했다. 실제로 MAX OS X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애플의 하드웨어 디자인에 매료돼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MAC OS의 매력에 대한 호기심에 스위칭하는 유저들도 늘어가고 있다.
애플은 인텔 칩셋을 적용한 포터블 라인업을 강화하며 맥북 시리즈의 출시와 함께
시장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하게 된다. 맥북의 판매량은 이전 아이북과 파워북의 판매량을 갈아치우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전문가급의 맥북 프로 시리즈의 판매량도 늘어났다. 스티브 잡스는 2008년 맥월드에서 세계에게 가장 얇은 노트북인 맥북 에어를
공개하며 하드웨어 개발 능력을 과시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아이팟, 세계 MP3시장을 장악
2001년 9월 23일 애플은 휴대용 음악 재생기인 아이팟을 발표했고 11월
10일에 정식 발매했다. 곧이어 온라인 음악 판매 서비스인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iTunes Music Store)가 열렸고
아이팟과 연동되는 음악 파일들을 한곡당 99센트에 판매했다. 이 서비스는 정식으로 음반사와의 계약을 통해 합법적인 디지털 음악을
공급하는 시장의 1인자가 되었고 2006년 9월에는 15억 곡 다운로드라는 기록을 세웠다.
아이팟은 액정표시장치, 내장 배터리, 대용량 메모리와 클릭휠 방식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매킨토시와 같은 편리하면서도 간결하게끔 만들고 이를 컴퓨터에 설치한 소프트웨어인 아이튠즈을 통해 음악과 기타
데이터들을 관리하고 동기화시키는 제품이다.
애플은 이를 기반으로 점점 사용자 경험을 더욱더 확장하여 컬러 디스플레이를 채용하고
사진 및 비디오를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음반회사들과 할리우드 영화사, 방송사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음반, 영화,
텔레비전 쇼 등을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또한 팟캐스팅라 불리는 손수제작물(UCC)인 개인 방송들을 쉽게
구독할 수 있는데 대부분 무료이어서 사용자들의 편의를 대폭적으로 향상 시키고 있다.
■아이팟의 최종 진화, 아이폰/아이팟 터치
2007년 1월 9일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샌프란시스코에서 사호를
애플컴퓨터에서 애플로 개명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팟의 최종 진화 형태인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를 선보였다. 모든
기능을 터치스크린으로 작동하는 스마트 폰의 형태를 띤 아이폰의 등장은 모바일 폰 시장의 흐름을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아이폰은 맥 오에스 텐 기반으로 기본적인 음성 통화에 2세대 무선통신 기술인 GSM
방식, 무선 데이터 통신에 2.5세대 무선통신 방식인 GPRS/EDGE와 Wi-Fi를 사용하여 통신이 가능하고 PUSH 방식의
IMAP 이메일, 인스턴트 메신저 형식의 SMS, 사파리, 향상된 음성메시지, Wi-Fi (IEEE802.11b/g), 블루투스
등의 기능을 탑재한 손안의 컴퓨터를 표방하고 나섰다.
또한 구글과 제휴하여 아이폰에 맞춰 특별히 제작된 구글 맵 기능을 사용하면 지도와,
지역 정보, 위성사진들을 아이폰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도 있는데 GPS와는 달리 근처의 무선 기지국과 무선랜
시설을 인식하여 자기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이 기능을 설명하면서 근처의 스타벅스 커피점을 검색해 커피를 주문하는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 외 유튜브 동영상을 아이팟에서 볼 수 있는 H.264 포맷으로 변환하여 볼 수 있다. 이처럼 차세대
PDA또는 스마트 폰이라 불리우는 아이폰/아이팟 터치는 2세대 제품을 출시하며 더욱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 세계의 모바일
폰, MP4플레이어 제조사들의 경쟁과 도전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iTMS의 컨텐츠 시장 장악능력
애플은 하드웨어 제조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발전적인 형태의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사업을 이어나갔다. 2007년 WWDC에서 아이폰과 함께 발표한 TV와 컴퓨터, 아이팟을 연결하는 셋톱박스인 애플 TV를 시장에
내놓으며 또 다른 도전을 예고했다. 이는 애플이 앞으로 컴퓨터시장이나 휴대용 음악기기와 판매시장 뿐 아니라 가정용 전자기기와
휴대폰 시장으로 그 사업영역을 대폭 확장하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음원 콘텐츠를 서비스하던 아이튠즈 뮤직스토어(iTMS)에서는 애플 TV 및
MAC에서 감상할 수 있는 유료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비디오와 DVD대여점의 역할을 온라인으로 옮겨온 것이다. 훨씬
이전부터 온라인 콘텐츠 제공 업체들이 이러한 방식의 서비스를 기획하고 시도해 왔으나 성공을 이루지 못한데 반해 애플은 전용
하드웨어의 공급으로 기반을 다지고 통합 소프트웨어인 iTMS의 도입으로 성공적인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iTMS의 확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 어플리케이션의 공급
창구로써 역할을 추가하기 위해 어플리케이션 스토어(AppStore : Application Store)를 오픈하기에 이른다.
관련 SDK를 통해 누구든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여 판매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AppStore는 수백만건에 달하는 전무후무한
콘텐츠 다운로드 기록을 세우며 새로운 온라인 사업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고 있다.